미국진출 한화오션 필리조선소 인수 조선업 슈퍼사이클 본격 시동?
필리조선소 인수 이후, 한화오션이 바꾸는 미국 해양시장
MRO·친환경·해외수주까지…한화오션, 이유 있는 질주
조선업은 긴 침체기 이후 다시 엔진을 돌리고 있다. 특히 한화오션의 미국 시장 진출과 필리조선소 인수는 단순한 해외 확장이 아니라 글로벌 조선업 지형을 뒤흔들 수 있는 신호탄으로 해석된다. 최근 몇 년간 조선업은 가격 인상, 친환경 전환, 수주 증가 등 구조적 변화를 겪어왔지만, 이제는 이 변화들이 실적에 반영되고 산업의 '실행력'으로 옮겨지는 구간에 진입한 분위기다.
한화오션, 왜 미국 필리조선소를 선택했을까?
미국 동부 펜실베이니아주에 위치한 필리조선소는 미국 내에서도 규모와 인프라가 상당한 편이지만, 오랜 시간 노후화된 설비와 낮은 생산성으로 실적 부진을 겪어왔다. 한화오션은 이 필리조선소를 인수하며 단순한 재무적 투자가 아닌, 미국 해군 MRO 시장 진입과 존스법 틈새 공략이라는 전략적 포석을 깔았다.
MRO(Maintenance, Repair, Overhaul)는 미국 정부 예산에서 꾸준히 집행되는 분야로, 군함이나 해양 플랫폼의 수리·보수·개조 수요가 안정적으로 발생한다. 실제로 필리조선소는 최근 미 해군 군수지원 건조 계약에서 일정 성과를 내고 있으며, 조선사 중 드물게 MRO 전문 역량을 쌓아가는 중이다.
한화오션은 한국 본사 인력 약 50명을 현지에 파견해 한국식 블록 건조 방식과 공정 스케줄링을 도입, 건조 일정을 5개월 이상 단축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건 단순한 기술 도입이 아니라, 미국 조선소의 생산성 구조 자체를 재설계한 사례로 평가된다.
미국이 한국 조선사에 문을 열기 시작한 이유
미국은 지금 자국 내 조선능력의 한계를 절감하고 있다. 높은 인건비, 오래된 설비, 낮은 생산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상선 및 해군용 선박 건조가 심각한 지연을 겪는 중이다. 이 와중에 중국 조선소들은 가격·납기·양산 모두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고, 중국 해군의 해양 확장 움직임도 거세지고 있다.
이런 배경 속에서 미국은 '동맹국 기술 도입'에 점차 우호적인 기조로 전환 중이다. 대표적인 예가 ‘동맹 조선소 활용법안(ARSAA)’인데, 이 법이 통과되면 미국 정부 발주 선박의 일부를 동맹국 조선소 또는 동맹국이 운영하는 미국 내 조선소가 건조할 수 있게 된다. 한화오션의 필리조선소 인수는 바로 이 트렌드와 정확히 맞물린다.
슈퍼사이클인가? 과열일까? 조선업 지금 상황은?
2021년 이후 선가(선박 가격)가 상승한 후에도 수주량이 유지되고 있고, 원가 부담이 컸던 후판(선박용 두꺼운 철판) 가격은 안정세에 들어섰다. 여기에 IMO(국제해사기구), EU, 미국의 친환경 선박 규제 강화는 전 세계 선주들에게 신조선(새 선박) 교체를 강요하고 있다.
특히 2024년부터 본격 시행된 EU ETS(배출권 거래제), FuelEU Maritime, CII 등급제는 노후 선박의 시장 퇴출을 가속화하고 있다.
감속 운항만으로는 대응이 안 되는 수준의 탄소 규제가 본격화되면서, 선주들은 자발적으로 LNG·암모니아·메탄올 연료 기반 선박을 발주하고 있다. 이 흐름은 단기 수주 사이클이 아닌, 구조적인 수요 전환으로 해석된다.
HD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과의 경쟁은?
한화오션의 질주는 뚜렷하지만, 경쟁사도 가만있진 않다.
- HD현대중공업은 최근 세계 최초의 자율운항 LNG운반선 계약을 체결하며 기술력을 입증했고,
- 삼성중공업은 드릴십·해양플랜트 수주에서 강한 회복세를 보이며 에너지 사이클과 동조하고 있다.
하지만 한화오션은 방산, MRO, 신성장 영역까지 포함한 ‘수직 계열화 조선 전략’을 추진 중이라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단순히 ‘배를 짓는 회사’를 넘어서, 해양 산업 전체의 밸류체인을 통합하려는 시도에 가깝다.
필리조선소, 조선업 수익 구조를 바꿀 수 있을까?
놀랍게도 필리조선소에서의 건조 단가는 한국 대비 3~4배 수준으로 책정되고 있다. 납기 이슈가 크고, 현지 설비가 부족하기 때문인데, 이를 한국식 공정 혁신으로 해결한다면 한척당 수익률이 크게 개선될 수 있다.
예를 들어, 텐덤 공법을 도입한 후 기존 도크 1개에서 연 1.5척 → 최대 10척 생산 가능하다는 시뮬레이션 결과도 있다. 단가 높은 시장에 생산성까지 확보하면, 지금의 고수익 국면은 단기 트렌드가 아니라 구조화될 가능성도 충분하다.
조선업, 지금이 기회일까?
조선업은 이미 실적 개선 초기 단계에 들어섰다. 과거처럼 ‘수주만 많고 돈은 안 되는 구조’에서 벗어나, 신조선 단가가 충분히 올라간 상태에서 후판 가격까지 안정돼, 수익을 실현할 수 있는 구간에 있다.
게다가 정책(미국-동맹 전략), 산업(친환경 전환), 기술(고효율 건조 시스템) 세 축이 동시에 움직이는 흐름은 쉽게 끝나지 않는다. 한화오션의 필리조선소 인수는 그 상징적인 시작일 뿐이다.
한 줄 요약
한화오션의 필리조선소 인수는 단순한 미국 진출이 아니다.
이건 조선업이 ‘실적 없는 기대주’에서 ‘정책과 실적이 맞물린 핵심 산업’으로 탈바꿈하고 있다는 신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