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리뷰/게임 리뷰

33원정대 클리어 후기 결말해석 숫자가 줄어드는 이유, 그리고 남겨진 이야기들

잡가이버 2025. 8. 4.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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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 어딘가, 거대한 비석에 새겨진 숫자 ‘100’. 그 숫자가 해마다 줄어들며 인류의 나이 제한을 갱신하고, 결국은 문명의 끝으로 치닫게 되는 세계. 이 잔혹하고도 아름다운 디스토피아 속에서 나는 '클레르 옵스퀴르: 33원정대'의 엔딩을 마주했다. 그리고 이 글은 그 이야기를 다 끝내고 나서, 내 안에 남은 감정과 생각을 정리해보는 글이다.

처음에는 네이버멤버십플러스 덕분에 XBOX 게임패스를 통해 가볍게 시작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가벼웠던 마음은 점점 무거워졌다. 이 게임은 고전 프랑스 예술에 대한 고마주로 시작되지만, 끝에는 ‘삶과 죽음’, ‘가족과 기억’, ‘창조와 파괴’라는 묵직한 주제를 정면으로 던진다.

페인트리스라는 존재가 비석에 숫자를 새기며 매년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이 세계. ‘고마쥬(Gommage)’라는 단어가 처음엔 단순히 사람을 지워버리는 초자연 현상처럼 느껴졌지만, 게임을 끝까지 보고 나니 그게 단순한 제거가 아니라 '기억을 지우는 슬픈 정화'였다는 걸 깨닫게 됐다.

그리고 그 지움의 대상은 남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누군가의 모습, 어쩌면 지워버리고 싶지만 지울 수 없는 과거의 죄책감과 상처이기도 했다.

33이라는 숫자가 쓰였을 때, 사람들은 더 이상 슬퍼하지 않는다.

죽음이 ‘고마쥬의 축제’가 되어버린 세계. 내 사랑하는 사람이 재로 흩어져도, 우리는 환호하며 원정대를 떠나보낸다. 게임이 보여주는 그 비정한 평온함은 플레이어인 나에게 거부할 수 없는 슬픔을 안겨줬다.

게임의 진짜 이야기는 메인퀘스트를 따라가기만 해선 절대 이해할 수 없다. 서브퀘스트, 등장인물들 사이의 서사, 페인트리스와 르노아르, 그리고 베르소 가족의 과거가 맞물리면서 이 비극이 왜 시작되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끝날 수밖에 없는지를 보여준다. '알린(페인트리스)'은 단순한 파괴자가 아니었다.

그녀는 ‘모성’이라는 이름으로 무너져 내리는 창조자였다. 사랑하는 자식을 되살리기 위해 전 인류를 인질로 삼은 한 여인의 슬픈 선택.

이 게임에서 가장 잔인한 존재는 결국, 기억이다.

페인트리스는 베르소를 되살리기 위해 캔버스 속 세상을 만들고, 기억을 붙잡은 채 그것을 반복해 그린다.

하지만 그 기억이 계속될수록 더 많은 이들이 죽어가고, 남은 자들은 무감각해져간다. 그리고 바로 그 감정마저도 지워지고, 단 하나의 질문이 남는다. ‘우리는 누굴 위해 살아야 하는가?’

엔딩은 멀티엔딩이지만 결국 하나로 귀결된다. 그 어떤 선택도 '지워야만 하는 과거'와 '남기고 싶은 사랑' 사이의 괴리를 완벽히 해소하진 못한다.

다만, 플레이어에게 남는 것은 *너라면 어떻게 기억하고, 어떻게 놓아줄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마지막 장면, 베르소가 그리는 세상의 끝에서 나는 마음 한구석이 서늘해지는 걸 느꼈다. 그것은 단지 게임의 비극성 때문이 아니라, 내가 살아가는 현실 속에서도 언젠가 기억조차 사라지고, 남은 사람들은 무표정하게 누군가를 떠나보낼 날이 올 것 같아서였다.

이 게임은 단지 비주얼이 멋진 예술 게임이 아니다. ‘죽음의 순서가 정해진 세상’에서 우리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를 묻는 철학적 탐색이다.

스토리 텍스트 하나하나, OST 한 줄음마다 마음을 할퀴고 지나간다. 특히 엔딩에서 바뀌는 음악은 꼭, 반드시, 천천히 감상하길 바란다. 그것마저도 게임이 전하는 하나의 이야기다.

클리어하고 난 지금, 난 이렇게 말하고 싶다.

“33원정대는 단지 죽으러 간 사람들이 아니라, 기억을 남기러 떠난 사람들이었다.”

그 숫자가 '0'이 되기 전에, 우리 모두의 고마쥬는 끝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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